2009. 9. 23. 23:34

절망에 관하여

'절망에 관하여'

예전에 N.EX.T. 빠돌이던 시절...(지금 들어도 좋아하지만)
신해철의 한껏 멋을 부린 음악들을 듣고 자라던 그 시절에
'절망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노래를 처음 접했던 것 같다.

근데 왜 이 제목이 떠올랐을까.
뭔가 포스팅을 해야겠다는 부담감,
그리고 지금 당장의 상황에서 제목부터
뭔가 시작해야겠다고 하니
머리 속에 있는 것은 '절망'이라는 단어인 것 같았다.

요즘 내 주 업무 중의 하나는
장의사, 혹은 저승사자다.

간암  말기 환자,
간경화 말기 환자,
췌장암 말기 환자,
담도암 말기 환자.

오늘은 4년간 간암으로 치료받고 있는 환자가
서울대학병원에서 전원을 왔고,
4년간 췌장암으로 치료를 받아온 환자가
지금 이순간 임종을 눈앞에 두고있다.
(내 스물 여섯번째 생일을 30분 앞으로 둔 지금 이순간)

그런 사람들에게 사망을 선언하고,
보호자에게 죽음을 준비하게하며,
더이상의 '치료' 수단이 없음을 설명한다.

그런 순간에,
특히 환자의 임종을 선언한 순간,
그 무언가 공간을 가득 채우는
미칠듯한 양의 슬픔,
절망이 가득차서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느낌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잘 알기 힘들 것이다.

아무리 암, 그것도 말기에,
수많은 고생을 환자와 함께한 보호자들이라고 할지라도
돌아가신 그 상황에서 터질 것 같은 그 슬픔은
거의 한 번의 예외조차 없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런 가운데
나는 문득 생각한다.
이 한 사람의 생명이 끊어짐에 있어,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과연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가.

그저 신경을 쓰고 돌볼 대상이
하나 줄었다는 그런 업무적 관점 외에,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그들의 삶의 시작을 선언하진 못하였지만
그들의 삶의 종결을 선언하는 당사자로서
나는
나는 얼마나
그들의 죽음에 대해
나의 철학을 준비해놓았는가.

그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어쩌면 그 환자의 죽음에도
그것을 선언하는 나에게도
진정한 '절망'일지도 모를 일이다.